예정일: 11월 22일 

 출산일: 11월 27일

 낳은 곳: 김옥진 조산원 

 

 11월 27일 새벽, 나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찌릿찌릿... 진통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걸 보니 진짜인가 보다. 벌써 며칠 째 속았던 터라 나는 말을 아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시간주기를 쟀다. 5분 10분, 4분, 7분, 그리고 점점 5분 간격이 확정되면서 나는 오전 열 시 정도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진통 시작된 것 같아, 5분 간격으로 네 시간째야. "  남편은 당황하지 않으면서도 내심 반기는 눈치다. "그래? 오늘 나오겠네..." 벌써 지난 주부터 아기를 기다렸던 나와 남편이다. 내가 조급해하는 걸 알아서 말은 안 해도 나보다 더 매일 아기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한 시쯤 되어 나는 재인이와 바깥 산책을 했다. 조산사 선생님께는 벌써 문자를 보냈지만 한 시쯤 되자 배가 좀 더 많이 아파서,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진통중인 산모가 조산원에 있다며, 얼른 안산으로 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두 아이를 다 집에서 낳은 나로서는 조산원 분만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이쪽으로 오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걸 알자 마음이 바빠졌다. 마침 장 보러 다녀온 남편에게말 하고 얼른 집에 가 출산용품를 쌌다. 아침 진통 중에도 아이들 먹을 게 걱정 되어 미리 끓여 둔 코다리 찜도 밀폐용기에 담고 밥도 챙겼다. 조산원에 가서 진통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기에 사과, 귤, 감도 한 보따리 쌌다. 재인이는 오늘 정말 동생 나오냐며 신나 했다. 멀리 엄마 아빠랑 여행가는 기분에 들뜬 두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안산 아기탄생 조산원으로 출발했다.

   

  출발 시간이 오후 한 시 반, 도착 시간이 두 시 오십 분... 도착하자마자 내진을 하신 조산사님은 웃으며 '아직 멀었어요. 이제 1.5센티 열렸어요' 라고 하셨다. 맥 빠지는 말씀이다. 나는 내심 셋째라 진통시간이 짧을 거라는 말들만 믿고, 도착하자마자 아기를 낳는 그런 상상을 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천천히 코다리찜을 데워서 아이들을 먹이고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설마 여섯 시, 일곱 시 경에는 아기를 낳겠지 하며... 아주 차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산 중앙역 근처 동서코아 빌딩에 있는 아기탄생 김옥진 조산원. 중앙역 근처는 매우 시끄럽다. 쇼핑샵, 먹거리 골목등으로 아주 왁자지껄하다. 남편과 나는 김밥과 라볶이를 먹었다. 날이 추워서 웬지 매콤한 게 땡겼다. 앤젤리너스 커피숍에 들어가서 나는 치즈케잌을, 재인이 아빠는 아메리카노를, 재인이는 하겐다즈를 먹고, 여전히 진통이 세어지질 않아 나는 재인이와 이십 분쯤 바깥을 걸어다녔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지자 재인이가 밖이 시끄럽다며 졸린다며 투정하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함께 모두 조산원에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공에 앉아 운동도 하고 계속 쉬지 않고 걸어다녔지만 저녁 일곱시가 되어 다시 내진을 했을 때도 2센티... 진통이 너무 더뎠다.

 

   옆방에는 또 다른 산모가 입주해 본격 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진통은 5분 간격을 지속, 조금 세어지긴 했지만 곧 아이를 낳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남편도 처음엔 긴장하더니 나중엔 가져온 오백 페이지짜리 '예수평전'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어디에나 책을 가져가는 사람이다. 재인이도 아장아장 성경을 읽고, 아무래도 오늘밤엔 동생이 태어날 것 같지 않다고 하자 '바로 동생이 태어나는 줄 알았는데 ' 하며 무척 기다렸다. 밤 아홉시, 열 시가 되자 나는 걷기도 지쳤고 허리가 너무 아파 누워버렸다. 왼쪽 옆으로 누워야 아기가 하늘을 안 본다고 해서 옆으로만 누워 있었더니 그것도 고역이었다. 설상가상, 있던 진통 주기마자 길어져 한 시간에 두 세 번 정도밖에 느낌이 오질 않았다. 오늘 밤 안엔 나오려나, 새벽엔 나오려나, 옆 방 산모는 내가 진통이 안 와 괴로워하는 밤 시간 동안 죽겠다고 흐느끼며 너무 짠한 신음소리를 밤새 내었다. 나중에는 내가 지칠 정도로 옆방의 진통이 계속되어 나는 새벽 시간 복도에 나와 걸었다. 새벽 네 시 반정도, 드디어 옆 방에선 아기 탄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길고 지루한 진통이 이제 끝나는 구나, 이제 그 신음은 없겠구나 싶어 방으로 살짝 들어갔다. 나는 아기에게 거의 애원하다시피했다. 이제 제발 나와줘.. 제발 부탁이야.. 엄마가 잘해줄께, 그 동안 일한다고 너무 힘들게 한 거 미안해... 엄마 이제 좀 자유롭게 해 줘..

 

  진통이 한번에 계속 와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진통이 오다 안 오다 이렇게 뜸하면 산모가 오히려 정신적으로 지쳐 버린다. 첫째 둘째 출산이 모두 스트레이트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진통의 과정은 너무 날 힘들게 했다. 임신기간도 그랬지만, 출산마저도...  진통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재인이 아빠가 지쳐하는 나에게 그랬다. '' 그냥 포기하고 편하게 자... 아침까지 못 낳으면 병원 가자.'' 충격적인 말이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제왕절개, 수술? 나에게? 셋째를?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치긴 하지만, 진행만 된다면 충분히 자연분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통이 이렇게 잘 안 걸리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침이 되면 조산사님께 물어봐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새벽 네 시쯤 선생님이 오셨다. 내진하시더니 '4센티 열렸어요, 진행되고 있어요" 하셨다. 나는 놀랐다. 진통이 있다 없다 하는데도 아기는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4센티다. 앞으로 6센티 언제 열리나..... "선생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요~ 기다려야죠~~" 태평하신 우리 선생님...ㅜ.ㅜ 나는 너무 힘든데...

 

  드디어 아침이 왔다. 벌써 오전 아홉시였다. 밤새 출산하지 않은 걸 아신 친정엄마와 시부모님 모두 걱정이 태산이셨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을 아산 집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아이들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밥도 문제였다. 다른 것보다 이 상태로라면 저녁때가 되어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진행됐나 보러 오신 조산사님께, 아이들과 아빠는 내려가라고 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놀라셨다. 

  "선생님, 진통이 또 안 와요. 거의 한 시간째 없어요." 

  "정말요? 나는 지금쯤 진통 떔에 아파 죽겠어요~ 하고 부른 줄 알았는데."

  "선생님, 혹시 가진통 아니에요? "

  "아니에요. 새벽에 4센티까지 열렸잖아요. 진행중인 거에요."

  우리의 침울한 기색을 알아채신 선생님...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씀을 드디어 하셨다.

  " 그럼... 이렇게 합시다. 주사를 조금 맞아봅시다. 나.. 정말 주사 안 놓는데, 셋째인데 이렇게 진행 안되는 경우가 없으니 열 방울 이내로 맞는 거에요."

   우리는 새벽부터 촉진제 주사를 맞자고 할까, 기다렸었다. 촉진제며 유도분만은 내 사전엔 없다 였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우리가 너무 기다리고 있었고 너무 지쳐있는 상태였다. 선생님은 아주 조금, 진통을 도와주는 정도로만 놓으실 거라며 주사를 꽂으셨고, 너무나 신기하게도 주사방울이 딱 세 방울 들어갔는데 바로 진통이 걸렸다. 아, 이럴수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본격진통, 거센진통이 발동이 걸렸다.

   

 공에 앉아서 눈을 감고 오는 진통을 참았다. 아니 사실은 너무 반가웠다. 너무 아팠지만 너무 기다렸기에... ㅜ.ㅜ 그렇게 몇 번 진통 후 양수가 터졌다. 신기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구나....

   바로 삼심여 분만에 자궁문은 6센티로 열렸고, 그 때부터 미칠 듯한 진통이 시작됐다. 이전 두번의 출산보다 더더욱 아픈 것 같았다. 왜였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제 힘줘야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진통의 주기 중 처음은 견뎌야 한다. 그리고 아주 거세어 질 때 그 때 항문에 힘이 들어가면 그 때 엄마도 죽을 힘을 다 해 항문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기가 밀고 내려오는 힘과 엄마의 힘이 합세하여 자궁문이 열리며 아기가 나온다. 옆으로 누운 자세로 낳자고 하셨지만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그때그때의 산모의 편안함을 위해 수시로 자세를 바꿀 수 있다. 조산사님은 오랜 경험으로 초음파 없이 청진기만으로 태아의 상태와 내려온 위치를 아신다. 건강한지, 자세는 어떤지도 아셨다. 진통이 몰려왔다 사라지는 사이사이 조산사님은 아주 부드럽게 내 팔과 다리를 손으로 천천히 만져주셨다. 그것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날 뒤에서 붙잡고 나는 남편에게 기대어 있는 자세로 마지막 한 순간을 위해 달려갔다. 남편을 얼마나 불렀는지,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재인이는 뒤에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했다. '여보, 나 좀 살려줘... 죽을 것 같아... ' 그 때 그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그 모든 순간에 우리 재인이가, 지훈이가, 남편이 함께 하고 있었다. 지훈이는 내가 진통하는 동안 로보카 폴리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고... 재인이는 엄마 아프다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아기가 세상빛을 보기 직전, 아기 머리를 재인이가 맨 먼저 보았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순간에도 끝이 있었다. 아기 머리가 나오는 순간, 참을 수 없이 아픈 마지막 순간 곧이어 몸통이 주르륵 빠져나왔고, 모든 고통이 끝이 났다. 탯줄이 이어진 채로, 열 달 동안 나를 많이도 힘들게 했고 나를 많이도 기다리게했던 우리 아가, 우리 꼬맹이 셋째가 내 배 위에 올려졌다. 하얀 태지가 등에 하얗게 덮인 채로... 조산사 선생님은 "아유, 아기 아직 38주 밖에 안 됐네요. 아직 태지도 안 없어졌어요... 아직 때도 안 됐는데 엄마 아빠가 나오라고 난리를 했네요." 하셨다. 엥? 뭐라구? 정말 첫째 둘째는 미끌하긴 했지만 몸에 이런 태지는 없었는데 하얀 태지를 아주 뒤집어 쓰고 나왔다. "예정일 계산 잘 못 됐나봐요."  나는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럼 예정일도 안 된 아이를 안 나온다고 난리를 쳤단 말인가? 그런 엄마 아빠 말 듣고 그래도 얘가 나와주었구나...ㅜ.ㅜ 너무너무 아이에게 미안했고 아이에게 너무너무 고마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인이 아기 때와 아주 똑같이 생겼다. 건강하고... 예뻤다. 지훈이는 태어나자마자 계속 울었는데 울 꼬맹이도 태어날 때만 울고 내 배 위에서 꼼지락꼼지락 울지도 않았다. 나의 열 달 간의 일말의 불안감과도 완전히 굿바이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나도 탯줄을 만져보았다. 태맥이 정말 세게 뛰고 있었다. 5분도 넘게 말이다. 재인이도 재인이 아빠도 만져보고, 십분 정도 있다 나온 태반도 재인이는 만져 볼 수 있었다. 재인이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지훈이도 재인이도 태어난 동생이 너무나 신기한지, '엄마, 동생 너무 귀여워, 너무 예뻐' 를 연발했다. 젖을 물리고 한 참 후 눈뜬 우리 막내딸을 바라보며 나도 너무 신기하고 너무 감사하고 너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 시간 정도 젖을 물리고, 잠든 막내 딸 사진도 한참 찍고, 우리는 출산 세 시간 반 만에 차를 타고 아산 집으로 다시 향했다. 이번에도 회음 절개도 없었고 찢어짐도 없었다. 밤새 화장실 들락날락, 자연관장으로 인공관장 필요없었고, 출산 후 바로 차를 타고 아기 안고 집에 왔지만 앉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정말 자연출산의 위대함이란... 

 

   세 번의 임신, 그리고 김옥진 조산사님과의 만남을 통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출산... 축복이다.

   우리 부부는 세 명의 아이들을 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제야말로 뭔가 

꽉 찬 듯한 느낌? 

   정말 어렵고 긴 여정이었지만 세번째의 임신의 과정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매일 내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잠을 자는 우리 셋째를 보면서는 그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큰 기쁨과 사랑을 느낀다. 너무 감사하다.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기에 그 끝에 선 지금, 긴 출산 후기를 남긴다. 

 

 --- 블로그에 올린 출산 후기 중 발췌해서 여기 올립니다. 세 아이를 모두 폭력없는 평화로운 자연출산 하게 도와주신

김옥진 원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조산사님... ^^ 우리 모두 산모와 아기를 위한 자연출산의 확산을 

위해 화이팅~~~!!!